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붕괴된 산업 기반을 재구축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중화학공업 육성"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 중 최대의 수혜자이며 가장 애착을 가지고 지원 발전시킨 곳이 바로 박대표가 지난 12일 방문한 부산에 있는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이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이 학교는 박 전대통령이 설립 후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학교로 유명하다. 개교 당시 교명은 "부산한독직업학교". 1967년 3월 부산 수산대학 임시 교사에서 150명의 학생들이 꿈을 키우기 시작했던 곳이다.
1964년 박 대통령의 서독의 방문에 대한 답방의 형식으로 취한 1967년 뤼브케 서독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한.독 양국의 교류를 촉진하는 개기가 됐다. 박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독일정부 기술원조하에 이뤄진 인천의 인천한독교가 거둔 성과를 인정해 독일로부터 실습설비 및 기자재등을 기증받아 부산에 실업학교 설립을 지시했었다.
한.독 회담에서 양국은 부산한독직업학교에 50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며, 설립초기 이 학교에서는 전국의 수재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당시 학생 전원에게는 공납금 면제와 현대적 시설을 갖춘 기숙사에서의 숙식제공, 1인1기 교육 등의 제도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또 졸업 후 일정 요건을 갖추면 군 복무기간 단축의 특전도 제공되었다. 입학 지원자격은 전국 중학교에서 학교성적 상위 5% 이내인 학생들이 교장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공개경쟁 모집 되었으며, 이 가운데서 거의 3% 이내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이 후 동백림서건(1967년 중앙정보부가 독일 동베를린에 거점을 둔 간첩단을 적발한 사건)으로 인해 양국의 관계가 불편해 졌고 그 후 서독의 지원이 중단되자 정부는 부산 한독직업학교를 공업계 특수목적고로 지정해 "기술입국"을 위한 인재양성에 팔을 걷어 붙이게 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될 정예 기술인을 양성하라"고 지시한 뒤 1971년 11월, 73년 10월, 75년 11월, 78년 2월, 7월 등 총 5회를 방문해 교직원 사택 67세대와 아파트 1동, 학생 기숙사 건립비용 등을 하사하며 관심을 기울렸다.
이 비슷한 시기에 이 부산기계공고를 모델로 특성화 공고가 대거 등장하게 되었으며, 73년 정부는 "중화학공업육성계획"에 따라 공업기술계 인력양성 및 공급계획을 실행하며 공고를 졸업하는 학생 중 관련 자격증을 획득하면 단기복무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또 재학중 전국에서 가장 많은 5.16장학생의 특전을 주기도 하였다.
이때 부산한독직업학교를 기계공고로 개편하는 동시에 모집인원의 대폭적인 확대가 이루어졌으며, 경남 마산의 경남대학부속공전을 기계공고로 개편하기도 했다. 72년 당시 이낙선 상공부장관이 일본 정부에 기술고등학교 설립협력을 요청한 뒤 금오공업고등학교가 세워졌고 54년 개교한 구미농업고등학교가 구미공고로 전환되기도 하며 전국에 기계공고 열풍이 부는 개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공업선진화에 일조를 하는 역사의 기초석의 한 페이지를 만드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 그 중심에 부산기계공고가 있으며, 이를 가장 잘 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의 박 전 대통령 휘호석 제막식에 참여는 새삼 이 학교에 대한 관심으로 세상의 눈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정리 ; 중앙일보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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