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교회!
그리고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학살사건!!
"제암리" 이 곳은 매일 출퇴근하는 길목에 이 역사적인 현장이 있지만 그간 무심코 지나쳐 온 곳이다.
도데체 이곳에 1919년 3월 무슨일이 있었길래 시골 한구석의 교회란 종교시설에 역사의 한줄을 힘주어 다루고 있는가?
퇴근길 잠시 들려 그 기록을 간단히 요약하며 들어가 본다.
1919년 3.1운동이 한창이던 봄.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 교회 청년들도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었다. 그리고 밤마다 이곳 마을인 발안의 장날을 맞아 그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일제 때 화성지역은 넓은 곡창지역과 수산물이 풍부해 다른 지역보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했던 곳이고 이런 이유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더욱 일제에 대한 울분을 일으며 과감하게 만세운동을 펼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일본 헌병들은 순종을 이유로 닥치는대로 총칼로서 사람들에게 매질과 난도질로 기를 꺽이려 했었다고 기록한다.
역사를 보면 4월 15일날, 아리타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가 제암리 주민들에게 무력으로 진압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을 사과하겠다며 바로 이 제암교회로 모이게 했었고, 그리고는 밖에서 문과 창을 봉쇄해버리고 방화와 총격을 가해 무고한 주민 29명을 학살을 했었다고 한다. 전시실의 그 기록을 보니 우리 아이만은 살려달라는 절규하는 엄마도 보이는데.... 그 만행은 역시 인근 안성, 천안 등 3.1운동의 전시관이 있는 역사속의 일본인과 다름이 없다.
그들은 그러한 만행을 자행하고 나서도 마을 주변에 교회와 일반주민들을 처참하게 살상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당시 스코필드 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일제는 이 사실을 은폐, 축소하며, 우발적인 사건으로 몰고 갔었다고~
이런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지난 3월1일 화성시에서는 3.1절을 기념하여 제암리 학살사건 재현과 만세재현 행진을 가졌었단다. 어린아이와 함께걷는 엄마, 유모차를 끌고나온 아빠. 모두가 크고 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이 한반도는 물론 세상이 어수선 할 때, 가끔 왜 우리는 이리도 힘이 없을까 서운한적도 많다. 그러나 아럴때 일수록 "태극기"만 보면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가슴이 울컥~뭉클하기도 하는데... 이날 역시 전 발안주민들의 가슴이 그리하였다고... 1천 500명의 시민들과 함께 발안에서 일본 군경들은 총으로 우리 선조들은 돌로 격돌하는 퍼포먼스의 현장에는 진짜 총도 아닌데 아!! 민족의 혼이 끓어서일까 그날 행사는 들끊은 민족정기로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연평도의 포격속에 전쟁이라는 공포와 우리가 국면한 경제난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그래도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일상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무슨 메뉴를 먹을까 저녁엔 무얼할까? 거기에 외국의 유명 브렌드의 비싼 커피도 음식도 가끔 마시고 먹으면서 쇼핑의 여유도 즐긴다. 그러한 행복이 그 누구의 덕인가? 오늘 새삼 이 역사관에 들러 얇은 흰 천 하나만 걸치고 몸으로 이 나라를 지켜낸 선조들을 되돌아 보노라니 어떤면에선 참 부끄러움이......
이 땅에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은 자성하고 되세겨야 한다
나라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맞은바 책무에서 이기심과 사상을 초월하여 최선을 다하는게 즉 애국이란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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